文化财名 平壤城(평양성)国宝1号
时代 高句丽(城郭遗迹)
所在地 平壤特别市 中区,平川区
평양은 427년 장수왕의 남하정책에 의하여 집안의 국내성으로부터 천도하게 되어 이후 고구려 수도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평양특별시 중구역에 위치하고 있는 평양성은 6세기 후반 고구려의 도성으로 건설된 이후 대체로 그 외곽을 원형대로 유지해 왔다. 평양성은 북쪽으로 금수산이 있고, 보통강을 따라 뻗다가 대동강과 보통강이 해자를 이루는 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둘레는 약 16km에 이른다.
평양성 성벽에서 발견된 성돌에는 평양성의 축성 년대와 함께 평양성 건설에 고구려의 5부에서 사람들이 동원된 사실, 성 공사의 담당구간, 담당자의 이름과 벼슬 등이 쓰여 있어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 고구려 후기의 수도성제도와 그 발전 모습, 고구려 사람들의 슬기와 재능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평양성은 대동강과 보통강을 자연의 해자로 이용하여 그 사이를 도성으로 정하였으며, 동복방으로 폭이 좁아지면서 북쪽으로 높아지는 지세를 이용하여 구축하였다. 지세가 낮은 곳으로부터 외성·중성·내성·북성으로 구획되어 있다.
时代 高句丽(城郭遗迹)
所在地 平壤特别市 中区,平川区
평양은 427년 장수왕의 남하정책에 의하여 집안의 국내성으로부터 천도하게 되어 이후 고구려 수도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평양특별시 중구역에 위치하고 있는 평양성은 6세기 후반 고구려의 도성으로 건설된 이후 대체로 그 외곽을 원형대로 유지해 왔다. 평양성은 북쪽으로 금수산이 있고, 보통강을 따라 뻗다가 대동강과 보통강이 해자를 이루는 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둘레는 약 16km에 이른다.
평양성 성벽에서 발견된 성돌에는 평양성의 축성 년대와 함께 평양성 건설에 고구려의 5부에서 사람들이 동원된 사실, 성 공사의 담당구간, 담당자의 이름과 벼슬 등이 쓰여 있어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 고구려 후기의 수도성제도와 그 발전 모습, 고구려 사람들의 슬기와 재능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평양성은 대동강과 보통강을 자연의 해자로 이용하여 그 사이를 도성으로 정하였으며, 동복방으로 폭이 좁아지면서 북쪽으로 높아지는 지세를 이용하여 구축하였다. 지세가 낮은 곳으로부터 외성·중성·내성·북성으로 구획되어 있다.